곰동지
정해창(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80년대 후반 어느 자리에서 심원 선생님의 루뱅대학 동창을 만난 적이 있었다. 수인사를 끝내자 이 분 대뜸 “곰동지 안녕 하신가요”라고 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영문 몰라 하는데 이 분이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주었다. 당시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심원선생님이 도서관에 자리를 틀고 앉으면 도무지 일어날 줄을 모른다고 해서 혹시 엉덩이에 곰팡이가 생기지나 않았을까하는 농담을 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들이 심원 선생님에게 붙여준 별명이 ‘곰’이었다는 것이다. 미련스럽게 공부만 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나중에 이런 말씀을 드렸더니 본인도 그런 별명이 있었다는 정도만 알고 계셨다. 선생님은 예나 지금이나 미련한 곰이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곰으로 남아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선생님의 별명이 곰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만큼 선생님은 곰 같다. 이제 그런 이유를 몇 가지 들어보겠다.
첫째 곰이 미련하다고 하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선생님도 미련하기로는 곰이 행님으로 모실만한 분이다. 30년 가까이 옆에서 지켜보았지만 미련하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이다. 일단 어떤 책이든 손에 잡으면, 반복해서 밑줄 치고 그것도 부족해서 여백에 잔뜩 써 넣고 하여 책이 금방 고서(?)가 되어 버린다. 불문학자인 사모님은 정반대로 책을 정갈하다고 할 정도로 깨끗하게 보신다고 한다. 가끔은 이 분이 자신을 무슨 대입 수험생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학자가 공부 열심히 하는 게 무슨 이야기 거리가 되겠는가마는 선생님은 그 차원을 훨씬 넘어서 있다. 처음에는 재하자로서 면구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그냥 포기했다. 흉내라도 낼라치면 스트레스가 쌓여서 내 스스로가 너무 고단해질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사실 천성적으로 게으른 내가 선생님 덕택에 상당히 부지런해진 편이다. 아무리 게으르다고 해도 바로 옆에 그런 곰이 있으니 농땡이도 하루 이틀이지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한 때 국가석학으로 추앙받았지만 지금은 사람들 뇌리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어느 교수가 일주일을 월화수목금금금으로 보낸다고 하는 신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많은 감동을 불러일으킨 말이었다. 그런데 심원선생님에게는 이게 별스럽다거나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이다. 선생님이 대학에 다닐 때 일이라고 한다. 선생님의 백씨께서 사법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평소에 자신보다도 더 심하게 공부를 하는 아우를 보고 기가 막혀서 혀를 찬 적이 있었다고 한다. “동생아 너는 우짜 고시 공부하는 내보다도 그리 지독하게 하노?” 막걸리 사발을 앞에 놓고 ‘낭만’이 어떻고 하던 당시의 대학 분위기로 보았을 때 미련한 곰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하기가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아무튼 본원의 철학이 한국 철학계에서 평가를 받는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낭만 좋아 하시네’ 하며 냥만을 경멸했던 심원 선생님 덕이다.
둘째 곰은 잡식성인데 심원 선생님도 곰 못지않은 잡식성이다. 선생님은 동서양의 다양한 철학을 게걸스러울 정도로 먹어치우는 엄청난 대식가일 뿐만 아니라 위장이 튼튼하여 소화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어떤 경우에는 상호 궁합이 잘 맞지 않아 보이는 것들도 주저하지 않고 잡수신다. 선생님이 그동안 자시고 내놓은 것들의 목록만 보아도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 가브리엘 마르셀의 구체철학, 베르그송의 직관주의 철학, 데리다의 해체철학, 메를로 뽕띠, 마르틴 하이데가, 맹자, 순자, 노자, 원효, 율곡, 지눌, 도덕경, 불교철학 등등 참으로 많이도 먹어치우셨다. 철학 공부 좀 해 봤다고 하는 나도 어지러울 정도이니 다른 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곰선생의 문제는 만족을 모른다는데 있다. 새로운 먹거리를 계속해서 찾아내어 놓으니 그걸 하나하나 맛보기만 하는 것도 당최 힘에 벅찰 지경이다. 선생님께서 말년에 하신 작업 중 하나 예를 들면 하이데거와 불교 유식학을 비교하는 것이었는데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철학 공부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둘 또는 그 이상의 철학을 비교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안다. 하나 통달하기도 어려운데 양쪽을 모두 꿰뚫고 있어야 하니 아무리 잘해도 본전 건지기 어려운 것이 비교 연구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비교철학이라는 장르는 성립할 수 없다고까지 선언하기도 했다. 그만큼 지난하다는 말이다. 하이데거와 유식학의 비교연구는 세계적으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심원선생님의 역작 중 하나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대식가 곰동지께서도 잡숫지 않는 것이 딱 한 가지 있는데 바로 분석철학과 같은 미국의 철학사조이다. 분석철학은 사실 맛이 없다 못해 먼지 가루 먹는 맛이 난다. 대체로 미각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좋아하는데 나도 젊었을 때는 별 수 없이 그걸 먹고 컸지만 너무 무미건조하여 당기지는 않는 먹거리이다. 그래도 어렸을 때의 입맛이라고 습관적으로 자주 먹는 편이다. 선생님은 이 거시기에 대해서 영 식욕이 나지 않는다고 쳐다보지도 않지만 그것마저 잡숴 버리면 이 불쌍한 중생이 먹을 게 없어지니 양보해 주신 것이리라 믿는다. 뒤늦게나마 고마운 말씀을 전한다.
셋째 곰의 가장 확실한 특성 중 하나는 그 엄청난 힘이다. 심원선생님도 힘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삐쩍 마른 몸매 하며 어깨는 한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어서 아무리 보아도 힘 쓸 데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나는지 기가 찰 정도이다. 한 가지 곰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아무리 힘센 곰이라도 나이가 들면 허약해지기 마련인데 선생님은 나이를 자실수록 더욱더 힘이 세졌던 것 같다. 80년대 중반에 이런 일이 있었다. 고등학교 철학교재를 여섯 명이 공동집필하는데 내가 간사를 맡았었다. 예나 지금이나 교수들의 똥고집에는 대책이 없는 편이다. 집필자 중 한 분은 자신의 원고에서 토씨 하나도 고치지 말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심원선생님은 당신의 철학적 입장이 물씬 풍겨나는 원고를 200매나 주셨다. 당시는 아직 육필로 작성하던 때였다. 우여곡절 고민 끝에 나는 곰선생에게 다시 써 줄 것을 요청했다. 선생님은 흔쾌히 받아들이시고 한 달도 안 되서 200매를 또 써 주셨다. 그 원고를 받아 들던 순간 기가 질렸던 심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이 사람 미친 사람이구나”
지난 20여 년 동안 꽤 여러 명의 외국학자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본원을 방문했었다. 철학 ‘종주국’에서 온 기분을 물씬 풍기며 한 수 가르치려 드는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그런 분을 정중하게 심원선생님의 연구실로 안내하곤 했다. 말이 좋아 예방이지 사실은 ‘한국에도 꽤 괜찮은 ‘물건’이 있으니 한 번 붙어보라‘는 생각에서였다. 선생님은 ’날씨‘ 이야기로 시간 낭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어떻게 학자라는 사람들이 그런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나 하고 있느냐고 반문하시곤 했다. 대신에 상대가 누구라도 상관없이 곧바로 맞장 뜨는 걸 너무 좋아하셨다. 봐주는 법도 없었다. 서양학자들은 대체로 언어에 능한 편이다. 모국어 외에 한두 개 언어는 다 한다. 물론 알파벳이나 단어가 많이 유사하기 때문에 배우기가 우리보다 훨씬 수월하다. 우리가 유럽이나 미국학자들과 마주 앉을 때 학문적으로 꿀리지 않는 경우에도 외국어에서 딸리니 공연히 주눅이 들곤 한다. 그런데 그게 심원선생님한테는 통하지 않았다. 영어면 영어, 불어, 독일어, 라틴어 어느 것을 들고 나와도 맞받아쳤다. 어떤 때는 손님에게 좀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깨져 나온 적도 있었다.
선생님의 곰 같은 힘은 19세기 영국의 역사가 토마스 칼라일에 관한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가 프랑스 혁명사를 탈고했을 때 하녀가 잘못하여 원고를 아궁에 속에 넣고 말았다. 칼라일은 한동안 크게 낙담했지만, “이 칼라일의 위대함은 프랑스 혁명사를 다시 쓸 수 있다는데 있다”라고 하며 다시 쓰기 시작하여 불후의 명작을 완성했다고 한다. 선생님께서 잠시 정치판으로 외도 하신 적이 있는데 연구실로 돌아오신 후 그 때의 그 ‘잃어버린 시간’을 두고두고 아쉬워하셨다. 선생님은 지나간 시간을 거슬러 메우기라도 하려는 듯 거의 매년 역작을 내어 놓으셨다. 마치 김형효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세상에 외치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곰은 코믹하다. 곰이 그 거대한 몸을 뒤뚱거리며 움직이는 모습을 모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 코믹하다는 점에서 심원선생님도 곰에 못지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심원선생님 뿐 아니라 본원 철학교수들도 다소 코믹한 구석이 있는 편이다. 나는 선생님과 하루가 멀다 하고 ‘이바구’ 하는데도 지루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봉숭아 학당의 철학 교실이 문을 열면 훈장인 심원선생님의 철학 쇼가 시작되고 반장인 내가 거기에 얼쑤하며 장단을 맞추었다. 철학과 얼라들(미안, 젊은 교수들)은 그 광경을 보면서 좋아라고 흥을 돋우었다. 다른 학문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철학은 그 특성상 개념을 다루기 때문에 자칫하면 분위기가 심각하고 무겁게 흐를 수 있다. 그러니 철학 담화를 재미있게 이끌어간다는 것은 곰과 같은 순진한 유머스러움이 몸에 배어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분위기가 이래서 그런지 이곳 동료 철학교수들에게서도 권위 의식과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 어줍지 않은 허명이나 자리만 얻어도 그만 마음이 교만해지고 몸에서는 거드름이 묻어 나오는 것이 보통인데 심원선생님은 그 특유의 해학으로 즐거움을 선사하시곤 했다. 철학과에는 재야 고수라고 자처하는 철학자들이 방문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심지어는 말도 안 되는 도사들이 찾아와도 다 들어주고 격려해 주시는 것을 몇 번 보았다.
그런데 드디어 이 미련한 곰동지에게도 한소식이 찾아오고 말았다. 60세 나이를 전후하여 자신의 평생에 걸친 화두가 ‘마음’이었음을 마침내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때부터 선생님은 종래의 모습 즉 치열한 철학 전투에서 벗어나 구도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그 무렵 지방의 한 대학에서 선생님을 총장으로 모시려고 삼고 초려했으나 완곡하게 사양하고 본격적으로 마음의 도 연마에 몰입하셨다. 사실상 머리만 깍지 않았을 뿐 수도승이나 매한가지였던 노대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새삼스럽게 철학이 무엇이고 삶은 또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곰동지
정해창(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80년대 후반 어느 자리에서 심원 선생님의 루뱅대학 동창을 만난 적이 있었다. 수인사를 끝내자 이 분 대뜸 “곰동지 안녕 하신가요”라고 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영문 몰라 하는데 이 분이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주었다. 당시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심원선생님이 도서관에 자리를 틀고 앉으면 도무지 일어날 줄을 모른다고 해서 혹시 엉덩이에 곰팡이가 생기지나 않았을까하는 농담을 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들이 심원 선생님에게 붙여준 별명이 ‘곰’이었다는 것이다. 미련스럽게 공부만 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나중에 이런 말씀을 드렸더니 본인도 그런 별명이 있었다는 정도만 알고 계셨다. 선생님은 예나 지금이나 미련한 곰이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곰으로 남아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선생님의 별명이 곰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만큼 선생님은 곰 같다. 이제 그런 이유를 몇 가지 들어보겠다.
첫째 곰이 미련하다고 하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선생님도 미련하기로는 곰이 행님으로 모실만한 분이다. 30년 가까이 옆에서 지켜보았지만 미련하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이다. 일단 어떤 책이든 손에 잡으면, 반복해서 밑줄 치고 그것도 부족해서 여백에 잔뜩 써 넣고 하여 책이 금방 고서(?)가 되어 버린다. 불문학자인 사모님은 정반대로 책을 정갈하다고 할 정도로 깨끗하게 보신다고 한다. 가끔은 이 분이 자신을 무슨 대입 수험생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학자가 공부 열심히 하는 게 무슨 이야기 거리가 되겠는가마는 선생님은 그 차원을 훨씬 넘어서 있다. 처음에는 재하자로서 면구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그냥 포기했다. 흉내라도 낼라치면 스트레스가 쌓여서 내 스스로가 너무 고단해질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사실 천성적으로 게으른 내가 선생님 덕택에 상당히 부지런해진 편이다. 아무리 게으르다고 해도 바로 옆에 그런 곰이 있으니 농땡이도 하루 이틀이지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한 때 국가석학으로 추앙받았지만 지금은 사람들 뇌리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어느 교수가 일주일을 월화수목금금금으로 보낸다고 하는 신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많은 감동을 불러일으킨 말이었다. 그런데 심원선생님에게는 이게 별스럽다거나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이다. 선생님이 대학에 다닐 때 일이라고 한다. 선생님의 백씨께서 사법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평소에 자신보다도 더 심하게 공부를 하는 아우를 보고 기가 막혀서 혀를 찬 적이 있었다고 한다. “동생아 너는 우짜 고시 공부하는 내보다도 그리 지독하게 하노?” 막걸리 사발을 앞에 놓고 ‘낭만’이 어떻고 하던 당시의 대학 분위기로 보았을 때 미련한 곰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하기가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아무튼 본원의 철학이 한국 철학계에서 평가를 받는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낭만 좋아 하시네’ 하며 냥만을 경멸했던 심원 선생님 덕이다.
둘째 곰은 잡식성인데 심원 선생님도 곰 못지않은 잡식성이다. 선생님은 동서양의 다양한 철학을 게걸스러울 정도로 먹어치우는 엄청난 대식가일 뿐만 아니라 위장이 튼튼하여 소화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어떤 경우에는 상호 궁합이 잘 맞지 않아 보이는 것들도 주저하지 않고 잡수신다. 선생님이 그동안 자시고 내놓은 것들의 목록만 보아도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 가브리엘 마르셀의 구체철학, 베르그송의 직관주의 철학, 데리다의 해체철학, 메를로 뽕띠, 마르틴 하이데가, 맹자, 순자, 노자, 원효, 율곡, 지눌, 도덕경, 불교철학 등등 참으로 많이도 먹어치우셨다. 철학 공부 좀 해 봤다고 하는 나도 어지러울 정도이니 다른 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곰선생의 문제는 만족을 모른다는데 있다. 새로운 먹거리를 계속해서 찾아내어 놓으니 그걸 하나하나 맛보기만 하는 것도 당최 힘에 벅찰 지경이다. 선생님께서 말년에 하신 작업 중 하나 예를 들면 하이데거와 불교 유식학을 비교하는 것이었는데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철학 공부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둘 또는 그 이상의 철학을 비교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안다. 하나 통달하기도 어려운데 양쪽을 모두 꿰뚫고 있어야 하니 아무리 잘해도 본전 건지기 어려운 것이 비교 연구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비교철학이라는 장르는 성립할 수 없다고까지 선언하기도 했다. 그만큼 지난하다는 말이다. 하이데거와 유식학의 비교연구는 세계적으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심원선생님의 역작 중 하나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대식가 곰동지께서도 잡숫지 않는 것이 딱 한 가지 있는데 바로 분석철학과 같은 미국의 철학사조이다. 분석철학은 사실 맛이 없다 못해 먼지 가루 먹는 맛이 난다. 대체로 미각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좋아하는데 나도 젊었을 때는 별 수 없이 그걸 먹고 컸지만 너무 무미건조하여 당기지는 않는 먹거리이다. 그래도 어렸을 때의 입맛이라고 습관적으로 자주 먹는 편이다. 선생님은 이 거시기에 대해서 영 식욕이 나지 않는다고 쳐다보지도 않지만 그것마저 잡숴 버리면 이 불쌍한 중생이 먹을 게 없어지니 양보해 주신 것이리라 믿는다. 뒤늦게나마 고마운 말씀을 전한다.
셋째 곰의 가장 확실한 특성 중 하나는 그 엄청난 힘이다. 심원선생님도 힘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삐쩍 마른 몸매 하며 어깨는 한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어서 아무리 보아도 힘 쓸 데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나는지 기가 찰 정도이다. 한 가지 곰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아무리 힘센 곰이라도 나이가 들면 허약해지기 마련인데 선생님은 나이를 자실수록 더욱더 힘이 세졌던 것 같다. 80년대 중반에 이런 일이 있었다. 고등학교 철학교재를 여섯 명이 공동집필하는데 내가 간사를 맡았었다. 예나 지금이나 교수들의 똥고집에는 대책이 없는 편이다. 집필자 중 한 분은 자신의 원고에서 토씨 하나도 고치지 말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심원선생님은 당신의 철학적 입장이 물씬 풍겨나는 원고를 200매나 주셨다. 당시는 아직 육필로 작성하던 때였다. 우여곡절 고민 끝에 나는 곰선생에게 다시 써 줄 것을 요청했다. 선생님은 흔쾌히 받아들이시고 한 달도 안 되서 200매를 또 써 주셨다. 그 원고를 받아 들던 순간 기가 질렸던 심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이 사람 미친 사람이구나”
지난 20여 년 동안 꽤 여러 명의 외국학자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본원을 방문했었다. 철학 ‘종주국’에서 온 기분을 물씬 풍기며 한 수 가르치려 드는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그런 분을 정중하게 심원선생님의 연구실로 안내하곤 했다. 말이 좋아 예방이지 사실은 ‘한국에도 꽤 괜찮은 ‘물건’이 있으니 한 번 붙어보라‘는 생각에서였다. 선생님은 ’날씨‘ 이야기로 시간 낭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어떻게 학자라는 사람들이 그런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나 하고 있느냐고 반문하시곤 했다. 대신에 상대가 누구라도 상관없이 곧바로 맞장 뜨는 걸 너무 좋아하셨다. 봐주는 법도 없었다. 서양학자들은 대체로 언어에 능한 편이다. 모국어 외에 한두 개 언어는 다 한다. 물론 알파벳이나 단어가 많이 유사하기 때문에 배우기가 우리보다 훨씬 수월하다. 우리가 유럽이나 미국학자들과 마주 앉을 때 학문적으로 꿀리지 않는 경우에도 외국어에서 딸리니 공연히 주눅이 들곤 한다. 그런데 그게 심원선생님한테는 통하지 않았다. 영어면 영어, 불어, 독일어, 라틴어 어느 것을 들고 나와도 맞받아쳤다. 어떤 때는 손님에게 좀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깨져 나온 적도 있었다.
선생님의 곰 같은 힘은 19세기 영국의 역사가 토마스 칼라일에 관한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가 프랑스 혁명사를 탈고했을 때 하녀가 잘못하여 원고를 아궁에 속에 넣고 말았다. 칼라일은 한동안 크게 낙담했지만, “이 칼라일의 위대함은 프랑스 혁명사를 다시 쓸 수 있다는데 있다”라고 하며 다시 쓰기 시작하여 불후의 명작을 완성했다고 한다. 선생님께서 잠시 정치판으로 외도 하신 적이 있는데 연구실로 돌아오신 후 그 때의 그 ‘잃어버린 시간’을 두고두고 아쉬워하셨다. 선생님은 지나간 시간을 거슬러 메우기라도 하려는 듯 거의 매년 역작을 내어 놓으셨다. 마치 김형효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세상에 외치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곰은 코믹하다. 곰이 그 거대한 몸을 뒤뚱거리며 움직이는 모습을 모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 코믹하다는 점에서 심원선생님도 곰에 못지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심원선생님 뿐 아니라 본원 철학교수들도 다소 코믹한 구석이 있는 편이다. 나는 선생님과 하루가 멀다 하고 ‘이바구’ 하는데도 지루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봉숭아 학당의 철학 교실이 문을 열면 훈장인 심원선생님의 철학 쇼가 시작되고 반장인 내가 거기에 얼쑤하며 장단을 맞추었다. 철학과 얼라들(미안, 젊은 교수들)은 그 광경을 보면서 좋아라고 흥을 돋우었다. 다른 학문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철학은 그 특성상 개념을 다루기 때문에 자칫하면 분위기가 심각하고 무겁게 흐를 수 있다. 그러니 철학 담화를 재미있게 이끌어간다는 것은 곰과 같은 순진한 유머스러움이 몸에 배어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분위기가 이래서 그런지 이곳 동료 철학교수들에게서도 권위 의식과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 어줍지 않은 허명이나 자리만 얻어도 그만 마음이 교만해지고 몸에서는 거드름이 묻어 나오는 것이 보통인데 심원선생님은 그 특유의 해학으로 즐거움을 선사하시곤 했다. 철학과에는 재야 고수라고 자처하는 철학자들이 방문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심지어는 말도 안 되는 도사들이 찾아와도 다 들어주고 격려해 주시는 것을 몇 번 보았다.
그런데 드디어 이 미련한 곰동지에게도 한소식이 찾아오고 말았다. 60세 나이를 전후하여 자신의 평생에 걸친 화두가 ‘마음’이었음을 마침내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때부터 선생님은 종래의 모습 즉 치열한 철학 전투에서 벗어나 구도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그 무렵 지방의 한 대학에서 선생님을 총장으로 모시려고 삼고 초려했으나 완곡하게 사양하고 본격적으로 마음의 도 연마에 몰입하셨다. 사실상 머리만 깍지 않았을 뿐 수도승이나 매한가지였던 노대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새삼스럽게 철학이 무엇이고 삶은 또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