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心遠 선생님에 대한 회상 : 이 병 래(전 중부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심원心遠 선생님에 대한 회상


이 병 래(전 중부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만남

그때가 언제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전물리학적 시간으로는. 

내가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선생님의 문자언어를 통해서였다. [마음혁명]!

유아교육과 교수로서 살아가고 있었던 나는 교수라는 직업으로 살아가는 나의 정체성에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었던 그즈음이었다. ‘정말 내가 교수 맞는가’, ‘그저 먹고 살기 위한 방편으로 거짓된 삶을 살고있는 것은 아닌가’, ‘미래 선생님이 될 예비교사인 제자들에게 나는 지금 무엇을 전해주고 있는가’, ‘이럴 거라면 차라리 교수직업을 포기하는 것이 더 정직한 거 아닌가’...

이럴 때 나는 [마음혁명]을 만났다. 어느 서점인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산으로, 들로, 강으로 무작정 돌아다녔던 때였다. 그리고 도서관에, 서점에 들러 이런저런 책을 뒤적이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어떤 해답을 찾아보려고 애쓰던(?) 그때, 서가에 꽂혀있는 [마음혁명]을 발견하였다. ‘마음혁명’이라는 진하고 독특한 글씨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책을 펼쳐 머리말 이야기를 읽고, 목차를 보면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려는 이야기들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았다. 제목 하나하나가 묘한 호기심과 놀라움을 주었다. 세어보니 52가지나 되었다. 주제들을 살펴보던 나는 왠지 모를 가슴 두근거리는 흥분과 얼굴 근육이 환하게 팽창되어 있음을 느꼈다. 단 한 권밖에 없었던 그 책. 다행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행운이었다.

책을 가슴에 안고 왔다. 너무 좋아서다. 

집에 와서 읽기 시작했다. 마음 가는 대로. 순서대로 읽지 않았다는 말이다. 아니 ‘읽었다’기보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선생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려는지 정확하게 알고 싶었다. 일단 선생님의 말씀을 다 들었다. 뭔가 해답이 있는 것 같았다. 분명 그랬다. 그런데 쉽지는 않았다. 선생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 어떻게 해야 할까...

선생님을 만나고 싶었다. 직접 만나 뵙고 선생님을 바라보며 선생님 말씀을 듣고 싶었다. 한국학중앙연구소에 전화를 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라고 소개되어 있기에. 그리고 혹시 그곳에 선생님께서 강의하시는 강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그런데 전화 받으신 분이 선생님께서는 강의를 하지 않으신다고 답변해주셨다. 친절하게. 그래서 용기를 내어 물어보았다. 혹시 김형효 선생님 전화번호를 알 수 없겠느냐고. 선생님 책을 읽고 선생님의 말씀을 꼭 듣고 싶어서라고. 

선생님 대신 후조 선생님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후조 선생님은 심원 선생님의 이 세상 동반자이시다. 후조 선생님의 배려로 선생님의 자택을 방문하였다. 서울 가락동이었다. 예전 언제가 내가 살던 동네였다. 한 달에 한 번씩 심원 선생님의 댁을 방문하였다. 以心傳心으로 오시는 또 다른 분들을 만나게 되었다. 선생님의 제자로서 직접 사사받으신 분이 계셨고, 이런저런 인연으로 선생님의 사유 세계에 공감하시어 참여하시는 분도 계셨다. 이 분들과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책의 내용과 이런저런 삶의 이야기와 마음을 나누는 그런 모임이었다. 

심원 선생님께서는 다소 거동이 자유롭지 못하셨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주로 골똘히 듣는 것을 즐겨하셨다. 그러시다가 가끔 환한 모습으로 반응하시면서 몹시 즐거워하셨고 때로는 궁금한 것을 질문하고 의견을 말씀하기도 하셨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의 표정 하나하나에 선생님의 마음 세계가 담겨져 전해온다는 것이 느껴졌다. 

어느 날인가, 회합을 마치고 헤어지는 시간에 후조 선생님께서 보따리 하나를 주셨다. 심원 선생님의 저술이 담긴 보따리였다. 감사하게 받아들었다. 소중한 선물이었다. 지금 나는 그 보따리 책을 틈틈이 읽고 있다. 아니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하시려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면서.

새로움

선생님의 사유 세계를 바라보다가 나는 내가 왜 헤매고 있었는지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어디에서 살고 있기에 그렇게 힘들어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삶에 대한 혼돈에 무언가 희미한 불빛이 보이면서 혼란스러웠던 고민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삶의 방식 문제였음을 알게 되었다. 존재적 삶의 방식과 소유적 삶의 방식. 모두 그것과 관련된 문제였음을 알게 되었다.

‘소유’와 ‘존재’. 이 용어는 이전에 에릭 프롬을 통해서 접했던 적이 있어 생소하지는 않았으나, 선생님의 문자언어를 통해 들려오는 소유적 삶과 존재적 삶에 대한 의미는 너무도 달랐다. 훨씬 명료하고 설득력있게 스며들어 왔다. 자유라는 말, 평등이라는 말, 사랑이라는 말, 희망이라는 말, 평화라는 말... 아주 특별한 철학자들이나 떠올리는 화두이고, 애매모호하고 분명하지 않아 보였던 이러한 말들이 자연스럽게 보였다. 그리고 설명되었다. 소유론적 차원에서 바라보는가, 존재론적 차원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고, 다르게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행복’이라는 말도 그러했다.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는 사람들은 많은데, 말하는 사람마다 행복 조건이 왜 그렇게 다양하고 각양각색인지를 알게 되었다. 소유적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 조건과 존재적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 조건이 다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나의 삶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몸과 나의 영혼에 예의를 지켜야한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새로운 발견이다. 

처음엔 ‘해체철학’이라는 말도 이상했다. 그러나 이젠 ‘해체철학’이라는 말이 편해졌다. ‘해체철학’이 마음을 치유하는 의사의 모습이어서 좋다. 내 생각의 새로움이다. 관점의 새로움이다.

변화

어느 순간 나는, 나의 살아가는 방식이 변화되었음을 발견하곤 혼자 미소지을 때가 종종 있다. 나 스스로 기특하고 대견할 때도 있다. 어떤 특정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것에 대응하는 나의 마음이 어디에서 발현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고 스스로 그 마음에서 벗어날 때. 그럴 때 그러하다. 그리고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하든지 그다지 부대끼지 않으면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게 될 때도 그러하다. 그 사람이 왜 그러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의연하고 여유로워진 내 마음의 변화다. 이럴 때 선생님의 사유세계에 조금 가까워진 것 같아서 좋다. 

요즈음에는 과거-현재-미래가 지금 이 순간 함께 있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느끼면서 뭔지 모를 숭고함과 겸손함을 느낄 때가 많다. 그리고 소유적 삶과 존재적 삶은 다르면서도 다르지 않고, 같으면서도 다르다는 선생님의 문자언어가 아무런 부대낌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느끼면서 묘한 희열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연속되는 여러 가지 생각에 빠져들곤 한다. 소유적 삶과 존재적 삶은 연속되어 있다는 것, 그것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 다만 소유적 삶과 존재적 삶의 연속선상에서 사람마다 살아가고 있는 지점이 다르다는 것, 그래서 같은 현상이나 같은 대상을 만나고 있으면서도 사람마다 다른 것을 바라보고,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판단을 하게 된다는 것.....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면서 펼쳐지곤 한다. 

한때 괴나리봇짐 지고 따라가는 나그네처럼 선생님의 학문 노정을 똑같이 따라가 보고 싶은 욕구도 있었다. 어디까지 인지는 모르겠지만 갈 수 있는 곳까지라도 가보고 싶었다. 나의 호기심은 주로 해체철학 즉, 존재론적 세계관과 관련된 것이었다. 노장사상, 현대 포스트 모더니즘의 해체주의, 하이데거, 데리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가브리엘 마르셀, 메를로 뽕띠... 이런 지적 호기심이 나를 변화시켰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말과 나의 행동이 영향을 받고 변화된 것 같아서다. 

특히 [가브리엘 마르셀의 구체철학]은 유아교육자인 나의 교수 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교육방법에 대한 철학적 기반은 물론 심리학적 기반을 확실하게 다질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책이었다. 인간의 마음 흐름에 대한 구체적인 과정과 설명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모든 교육적 상황에서 적용할 수 있고, 적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 책을 바탕으로 유아교육활동에 적용하기 위한 지침서를 저술하고 싶었으나 이루지는 못하였다. 유아교육과 교수인 나의 교육방식에 변화를 일으켜준 고마운 책이다. 물론 심원 선생님의 저서다.

적용

나는 심원 선생님의 사유 세계를 교육 현장에 적용한 경험이 있다. [마음혁명]과 [가브리엘 마르셀의 구체철학]에서 발견한 것을 수업시간에 적용한 경험이다. 마르셀의 구체철학은 유아교육 방법론과 관련하여 전공 교과목 시간에 적용하였다. 인간의 마음 흐름 과정에 대한 원리는 어떤 교육심리학 관련 교재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새롭고 신선한 원리라고 판단되어서다. 그리고 마음 흐름의 각 단계마다 교사는 아이들과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이 효율적인지를 논의하고 토론하면서 수업을 운영하였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이어서 좋다’는 학생들의 반응이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을 적용하면서 자기 ‘자신의 마음이 열려지는 것 같다’는 반응이었다. 분명 좋은 방법이었으나 정년퇴직을 하면서 더 이어가지는 못했다. 아쉬운 부분이다.

더 재미있었던 것은 [마음혁명]이었다. 이 책에 수록된 52가지 주제 중에서 교과목별 성격에 따라 12개씩을 선정하여 수업시간에 적용하였다. 12개 주제를 선정한 이유는 학기당 12주 동안 1주제씩 적용하기 위해서였다. 주로 철학, 심리학 관련 교과목이었는데 교과목은 다르지만 동일한 주제를 선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수업은 토론과 발표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먼저, class size에 따라 5~7명을 토론 그룹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각 토론 그룹별로 수업주제에 대한 개인별 소감을 각자 돌아가면서 소개하게 하였다. 소개해야 하는 내용은 3가지다. ① 저자가 나에게 전해주려는 내용의 요지, ②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떠오르는 생각, ③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새롭게 발견하게 된 것. 이것이 그것이다. 즉 요지-성찰-발견이다.

두 번째는 토론 그룹 내 개인별 의견에 대한 마음을 나누는 과정이다. 마음을 나누는 과정은 서로 지켜야 할 3가지 규칙이 있다. ① ‘옳다’, ‘그르다’는 판단적 평가를 하지 말 것, ② ‘왜’라는 표현으로 정중하게 질문할 것, ③ 의견이 다를 때는 ‘내 생각은~’이라는 표현으로 시작할 것. 각자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기 위해서다. 

세 번째는 각 토론 그룹별 대표자가 전체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과정이다. 각 토론 그룹별 대표자는 자기 그룹의 구성원들이 어떤 소감을 제시하였는지를 전체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시간이다. 이 과정에서 교수는 대표 발표한 학생이 누구였는지를 기록할 필요가 있다. 모든 학생들에게 가급적 동일한 발표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또 다른 교육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담당교수가 종합적으로 정리한다. 먼저 학생들이 성찰한 것과 발견한 것 즉 ②번과 ③번을 중심으로 긍정적 평가를 해주고, 다음으로 담당교수가 첨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학생들의 질문을 유도하고 학생들의 질문에 가급적 학생들이 답변하는 기회를 준 다음 담당교수가 첨언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마무리하였다.

[마음혁명]은 나에게 매력있는 책이었다. 학생들의 마음이 쑥쑥자라면서 변화되는 모습을 실감할 수 있게 해주었다. 

회상

심원 선생님과의 만남! 그것은 행운이었다. 그리고 선물이었다. 선생님과의 인연이 감사하다. 혼란스러웠던 나의 정체성은 이미 회복되었다. 유아교육자로서 살아가는 삶의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생님의 문자언어를 들을 때마다 그 빛이 더 밝아지고 확연해진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원 선생님의 사유세계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행운이고 선물이 될 것이다. 확신한다. 내가 체험하고 경험한 믿음이고 확신이다. 나도 심원 선생님께 받은 선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려주려고 한다. 선생님의 사유세계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거다. 심원 선생님의 사유방식을 통해서 소유적 삶의 습관에서 자유로우면서 존재적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다. 

어떻게 하면 일반인들이 이런 지혜를 수월하게 알아듣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에 대하여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 지금은 [원효의 대승철학]을 다시 한번 읽고 있다. 선생님께서 문자언어로써 말씀하신 책이다.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말씀하시고 출판하셨다고 한다. 선생님의 사유세계에 대한 정수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나를 心月이라 부르기로 하였다. 소유적 삶과 존재적 삶이 조화를 이루는, 소유적 삶에 함몰되는 위험에서 자유로운, 존재적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놓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어서다. 그런데 더 큰 매력은 心遠과 어감이 유사해서다. 내가 나를 사랑하게 된 것. 참 대견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내 안에 心遠 선생님이 계셨구나!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