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지란지기 김형효 동창을 그리며 : 박성태(12대 국회의원, 심원의 마산고 동문)

영원한 지란지기 김형효 동창을 그리며

                                   
 박성태(12대 국회의원, 심원의 마산고 동문)


 독일의 문인이며 의사인 ‘한스 카롯사’는 “인생은 만남”이라 하였거늘 “한번만의 초대”인 이 인생에서 김형효라는 이름 석자와의 만남은 이 사람에게 있어서는 생사를 초월하여 지성과 감성과 영성에 바탕한 영원한 친구로 가슴 속에 늘 자리하고 있는 참된 우정의 표상이라 밝히고 싶다. 윤석열 대통령이 금년 5월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방한한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축하 만찬 환영사에서 평소 애송하는 ‘예이츠’의 시를 인용하면서 “나의 영광은 훌륭한 친구를 가진데 있다”고 하며 인상적인 환영 스피치를 한 바 있다. 


김형효 박사가 서울대 출신으로 벨기에에서 철학박사를 받고 서강대 교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부원장을 거쳐 12대 국회의원에 입성하는 영광을 누린 것도 김박사의 영명한 지성때문이겠으나 주위의 출중한 친구들이 즐비한 데다 비록 중소도시인데도 우수한 자질의 마산고교라는 텃밭 자체가 워낙 좋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마저 모교의 자랑을 좀 하자면 마산고 1회 졸업 삼영화학의 이종환 선배는 한국 아니 아시아에서 기부왕으로 장학금 1조원을 희사하고 서울대학교에도 650억원을 기부하여 관정도서관을 완공하게 하였다. 이 선배는 지난 11월 20일 100세를 맞아 고향 의령에서 상수연을 성대히 개최하는 행사를 가졌다. 12회 노재봉 선배는 국무총리로 봉직하셨다. 또, 16기의 검사 출신 김영재 변호사는 마산고 동창회장으로 발전의 기초를 다짐과 함께 따님이 대법관에 취임하는 영광을 가졌었고, 당시 우리 동기만도 서울대학교에만 중소도시 마산에서 50여명이 합격되었는데 17기는 마산고 전체 동창 중 정계, 기업, 문화계를 총망라하여 가장 성공적인 진출을 자랑하고 있다. 소개 드리자면 정계에서는 한국기자협회장 출신의 손주환 공보처장관, 12대 국회에 동시에 진출한 김형효 박사와 필자, 이장춘 싱가폴대사, 김옥조 총리비서실장, 검사 경력의 정태류 변호사, 판사 경력의 오성율 변호사,  기업상계에선 대기업 코오롱기업 하기주 회장, 넥센 타이어 대표 강병중 회장, 재미 건축가 김운해, 조아제약 조원기 회장, 한국전력 김정부 부사장, 현대건설 사장 및 중역에 이존명, 박찬규, 황성혁이 있다, 교육사회 문화계에선 한국음악협회 명예이사장, 대한의사협회 고문인 필자, 국전 중진화가 이병석, 명지대 법학과 주임교수 임홍근, 시인 주문돈, 성우 황일청, 영화감독 한상훈, 작곡가 이수인 등 사회 전반에 골고루 빛나는 중진으로 참여하였었던 실상을 본다. 현세는 눈에 보이는 돈이나 물질세계의 중요성이 너무나 강요되고 있는 세상인데 반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의 중요성이 홀대받고 있는 실정의 판국이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에는 이념전쟁만 있지 철학이 없다고들 한다. 그래도 박정희 대통령 시절은 군부정치였지만 “하면 된다”는 정신력과 새마을 정신의 열정으로 조국 근대화를 이뤄냈지만 국민들은 그걸 잊고 모르고 산다. 


이제부턴 김박사와 나와의 어느 누구도 가질 수 없는 각별한 인연의 예화를 들려고 한다. 아까 얘기한 대로 김박사와 필자는 마산고 17기 동기졸업으로 김박사는 문과에서 필자는 이과에 소속되었는데, 매월 실시하는 모의실력고사 성적을 학교 정문 현판에 성적순으로 공개하고 연말에 수석상을 실시하였는데, 필자 기억에 김박사는 늘 수석군에 있었다. 필자는 마산중학교 졸업당시 수석을 하고도 수석상 발표 일주일 전에 야간에 친구 몇 명과 “마음의 행로”라는 영화를 같이 본 사건이 적발되어 3일 정학을 받는 바람에 중학 졸업시에는 수석상 수여식을 취소당한 아픈 경험이 있었는데, 고등학교 졸업시에는 정식으로 전체 수석상을 받아 중학교때의 설움을 씻은 바 있다.  


김박사는 필자가 서울의대 졸업 후 외과전문의로 개업후에도 마산출신의 10여명의 친구들과 함께 부부동반으로 격의없이 세상 돌아가는 얘기나 자기 전문분야의 숨은 야화들을 스스럼없이 얘기 나누었고, 좋아하는 가곡이나 인기 가요들을 합창하면서 즐기기도 하였다. 특히 김박사는 학자이면서 냉철한 지성의 소유자라기 보다는 친구들한테 풍부한 화제의 주인공이면서 가슴이 따듯한 사람으로 색인되곤 하였다. 부인과 함께 그 진솔함이 항상 베어나와 내면의 향기가 절로 풍겨 나왔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김박사와 나 사이에 잊지못할 사건이 생겼다. 강동구 천호동 아산병원 근처에서 박성태 외과의원이란 필자병원에 당시 정신문화연구원 중견스태프로 있던 김박사가 밤중에 급히 고열과 복통 때문에 나한테 연락이 왔다. 당시 가족주치의도 맡고 있던 터라 어서 내 병원으로 오라고 하여 김박사를 진찰했더니 41도의 고열에다 맥이 거의 안 만져질 정도의 쇼크 상태로 화농된 담랑(쓸개주머니)이 파열 직전으로 부어 중태였다. 새벽에 급히 개복수술준비를 끝내고 필자의 집도하에 서울대병원 외과 후배인 김용일 교수(후에 삼성의료원 외과과장 취임)를 제 1조수로 세워 화농된 담랑을 단숨에 제거하고 담도까지 열어 그 속에 들어있는 담석들을 깨끗이 제거하고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그 후 극적인 수술 후 회복을 보고 있던 중에 수술 후 10일째쯤부터 새로운 복통이 시작되어 수술자인 필자는 무척 당황하였는데 새 복통 원인을 처음에는 알 수 없었으나 심사숙고 끝에 진단으로 담도 끝에서 십이지장으로 담즙이 흘러 들어가는 경계점에 있는 괄약근에 1개의 담석이 꽉 박혀 제거 대상에서 은폐되어 통증이 유발되는 것이라 판단했다. 순간 필자는 사랑하는 친구의 복부를 수술하고도 또 재수술해야 한다는 것에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필자로 말하자면 한국도규계의 석학인 서울의대 외과 은사이며 간, 담도계 수술의 권위자인 민병철교수와 한국에서 처음으로 간이식 수술을 성공한 김수태 교수의 제자로서 “자랑스런 외과의사상”도 받고 국제외과학회 정회원으로 프라이드에 차 있었는데, 친구의 복부 담도 수술에서 199개의 담장 결석을 제거하고 담도 수술도 잘해냈는데도 다시 매우 어려운 자리에 박힌 담석 1개 때문에 재개복 수술을 해야 함이 외과의에겐 환자에게 쓰린 고통을 또다시 주어야 함에 몸둘 바를 모를 정도로 안쓰러운 지경이었다. 부인되시는 분의 충분한 이해로 다시 서울대 병원에서 필자의 은사며 도규계의 명의인 김진복 교수에게 사정을 호소하고 재개복 수술에 들어갔는데 결국 매우 어려운 부위의 담석제거가 완료되었다. 그 후 출혈에 신경을 많이 쓰며 전 의료진이 김박사의 완치에 정성을 쏟았다. 당시 서울지검 검사로 재직 중인 김박사의 친형 김형표 고교선배도 정성껏 동생의 수술 후 회복을 위해 같이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이 잊지 못할 뼈아픈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필자의 가슴 속에 남아있다.

   그 후 몇 년이 흘러 민정당의 제5공화국 출범과 동시에 정신문화연구원 부원장에 재직 중인 김박사와 대한의사협회 대표고문으로 의학계를 대표하고 있던 필자는 12대 민정당 국회의원 비례대표에 같이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하는 기쁨을 나누었다. 12대 국회에서 김박사는 교육분과위원회에서, 필자는 보사분과위원회에서 활동하였는데 후에 국회사무총장으로 봉직한 우병규 전의원이 언급하기를 김박사가 출중한 활약상을 보였다고 했고, 필자 역시 한국의료보험제도 정착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기억이 난다. 


그 뒤 김박사는 헌정회 정기모임에서도 “한국철학계의 동향”이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하기도 했다. 요사이 아슬아슬하게 돌아가는 우리나라 정국이 자유과 공정과 상식의 올바른 나라가 되기 위해선 “법치”가 최우선의 통치철학이 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인데 이럴 때 일수록 김박사가 강조하였던 나라사랑에 대한 “큰 그릇의 깨어있는 지성” “혜안의 통치 리더십”이라는 통치철학이 새삼 그리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김박사를 생각할수록 세상이 아무리 변하여도 변함없는 것은 오직 진실한 친구와의 우정뿐이라 생각된다.



필자 약력:대한민국 헌정회 원로위원

12대 국회의원. 대한의사협회 고문

한국음악협회 명예이사장

대경요양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