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도반(道伴); 심원 김형효 선생님을 기리며...... : 의학박사 벽파 (碧波) 권명대

스승과 도반(道伴);  심원 김형효 선생님을 기리며......  

              
의학박사  벽파 (碧波) 권명대 



  나는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고 직업은 치과의사이고 나이는 선생님보다 2살 아래인 1942년생으로 2022년 현재 81세이다. 그런데 학문적 호기심이 많던 나는 전공과목과는 별개로 역사. 철학, 종교, 과학, 음악 등 여러 가지 학문에 대한 관심과 궁금증이 많았다.

 ‘중용(中庸)’ 제20장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 제15장, ‘근사록(近思錄)’ ‘위학편(爲學篇)’ 에 이르기를 [‘博學, 審問, 愼思, 明辨, 篤行 五者廢其一이면 非學也니라’]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히 생각하며, 명확하게 분별하고, 진실되게 행하는 것 5가지 가운데 한 가지라도 빠지면 학문을 한다고 할 수 없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학문을 넓게 깊게 이루려면 ‘박학다식’이 선행해야 한다는 구절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고 여러 학문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고교생 시절부터 서양 클래식 음악에 심취하였고, 대학을 졸업하고 인턴, 레지덴트 과정, 박사과정을 거치면서 전공과목인 치의학의 공부에 심혈을 기울이면서도 30세쯤부터는 환인, 환웅, 단군 등 우리나라 고대사(古代史)와 비교종교학, 불교 철학 공부와 명상 수련 등에 몰두하기도 하였다.

  그 가운데 불교 철학이야말로 모든 종교, 철학, 사상, 과학을 아우르는 것으로 가장 광대하고 심오하며 수승(殊勝)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특히 불교 철학 공부에 심취하여 전력을 다하였으며 아침, 저녁 각 1시간씩 하는 명상 수행은 지금까지 50여 년간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런데 특히 불교와 명상 수련 같은 공부는 초월성과 논리를 토대로 하는데, 초월성은 수행을 통해 직관으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고, 논리는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논리를 갖추어 불교 철학을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서는 동, 서양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수행자는 궁극적인 경지에서는 통상적인 논리, 사유를 차단해야 된다고 되어있으나, 그 이전에 기본적인 교설 등을 배우고 이해하는 단계에서는 논리적 사유의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사서(四書) 등 동양철학은 친할아버지에게서 어릴 적 국민(초등)학교 때부터 배워 익혀 온 관계로 당시에 대략적인 것은 조금 이해하는 기본적인 수준은 되었으나 특히 생소한 서양철학 공부가 문제였다.

  그래서 대학의 철학과에 학사 편입해 볼까 하는 생각도 하였으나 여의치 않아 결국 치과의원에 출근했다가 퇴근한 후 교보문고 등의 철학 코너에 가서 독학하였으나 별 효과를 얻지 못하다가 조계사 옆에 있는 불교 대학에서 철학 강좌를 통해 3년여간 집중적으로 서양철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런데 서양철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탈레스를 시작으로 파르메니데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데카르트, 칸트, 헤겔, 훗설, 니체 등등으로 이어진  ‘존재 망각의 철학’을 거쳐서 서양철학이 2,500여 년 만에 ‘존재 철학’인 하이데거 철학에 이르렀는데, 하이데거 철학에서 ‘존재론적 차이’- ‘존재자와 존재’ ‘Sorge’, ‘무(無. Nichts, Nothing)’, ‘Dasein’, ‘Ereignis’ 등등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았다.

 또한 스콜라철학에서 말하는 ‘실존’과 ‘본질’ 사이의 구별과 칸트의 ‘경험이성(경험-주객 분리 )’과 ‘선험적 순수이성(경험 이전-주객 근거)’ 사이의 ‘초월 철학’에 대한 물음을 토대, 근거로 ‘실존(Dasein)’의 분석을 통해 ‘존재 자체’를 규명하려는 하이데거의 전기(前期) ‘존재 철학’ 과 존재의 ‘고유성’을 다룬 후기(後期) ‘존재 철학’을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나에게 서양철학을 가르치시던 김종욱 교수님께서 김형효선생님의 유명한 하이데거 강의를 한번 들어 볼 것을 나에게 권유하였고,우여곡절 끝에 불교 대학에서 김형효 선생님의 하이데거 강의를 듣게 되었고 그것이 내가 하이데거 철학을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김형효 선생님은 철학사상(哲學史上) 최초로 불교적 관점에서 하이데거의 전기(前記) 철학  (‘Dasein’)을 다룬 『하이데거와 마음의 철학(2000)』과 하이데거의 후기(後期) 철학 (‘Ereignis’)을 다룬 『하이데거와 화엄의 사유(2002)』를 저술하신 바도 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몇 해 후 불교 철학 가운데 대승불교 ‘유식학’을 공부하던 시기에 대치동의 내 집에서 가까운 개포동에 금강선원이 있었는데 그곳에 계시는 혜거 스님의 ‘유식 30송  (頌)’ 법문이 그 당시 유명하였다. 그런 어느 날 혜거 스님의 ‘유식 30송(頌)’ 법문을 듣고 나온 후 금강선원 법당에서 뜻밖에 전(前)에 불교 대학에서 하이데거 강의를 하셨던 김형효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김형효 선생님과 나 사이의 “특별한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김형효 선생님은 자신의 철학 완성을 위해 불교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어 금강선원에 다니시는 것 같았고, 불교 철학에 심취하여 심혈을 기울여 공부는 하지만 기복적 신앙으로 얼룩진 종교로서의 불교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관계로 특정 사찰에 불자로서 정례적으로 다니지는 않던 나도 선생님을 만난 이후 거의 매주 일요일마다 금강선원에 다니게 되었다. 그 이후 선생님과 금강선원에 다니면서 주로 불교 철학을 중심으로 종교, 동, 서양철학, 사상, 과학  등 여러 가지 담론을 주고받으면서 지낸 특별한 세월이 2,003년부터 2,018년까지 대략 15년가량이 된다.

  당시 금강선원 불자 들 가운데는 불교 철학과 동, 서양철학을 아울러서 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을 조금이나마 알아듣고 선생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준의 사람이 별로 없었고, 그래서  주로 선생님과 나 사이에 대화가 이루어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특별한 인연”이 지속되었던 것 같다. 선생님께서 평소 말씀하시기를 불교 철학을 비롯한 동, 서양철학과 과학(상대성 원리, 양자물리학 등) 등의 공부에 치열한 나를 보고 내가 박학다식하다고 하시면서 치과의사보다 철학 전공자가 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나를 격려하시며 특별히 대해 주신 것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항상 온화하시고 겸손하시며 자비로우셨으며 학문적인 면에서는 진지하고 예리하셨던 선생님의 건강이 한때 좋지 않으실 때가 있었는데, 선생님의 건강회복을 위해 내가 수개월 동안을 토요일만은 모든 일을 제쳐두고 매주 토요일마다 선생님의 승용차를 운전하여 심원 선생님과 사모님이신 후조 선생님을 모시고 대치동에서 경기도 파주까지 가서 내가 소개한 침술가분에게 선생님이 침 맞으시고 뜸 뜨고 하는 치료받으시는 것을 돕고 다니면서 왕복 운전하는 운전기사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인사동에서 서양철학 강의도 하셨고, 자신의 저술인 『사유하는 도덕경 』 이라는 저서를 중심으로 한 ‘노자의 도덕경’ 강좌 등을 통해 동양철학을 강의하기도 하셨는데, 그런 선생님의 동, 서양철학 강의를 여러 사람들이 듣고 배울 수 있게 된 계기의 대부분이 원천적으로 보면 나로부터 비롯되어 연결된 인연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선생님께서는 말년에 가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러제자들을 포함하여 몇몇 분들과 함께 지금의 ‘심원 철학회’의 전신(前身)인 철학 모임을 결성 하여 한 달에 한 번 만남을 이어 갔는데, 나는 초기에는 그 모임에 참여하지를 않았었으나, 선생님의 거듭된 권유를 받고 몇 년간 그 철학 모임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런 가운데 어느 날 애석하게도 선생님께서 갑자기 별세하신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이 계시지 않은 가운데에서도 나는 선생님을 추모하는 마음을 속으로 간직한 체 철학 모임에 계속 참여하였고, 모임에서 수행이라는 타이틀 아래 불교 이야기를 연속으로 수개월에 걸쳐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론적 알음알이의 관념적 지식에 메달려 설왕설래하는 것만을 능사로 하기보다는 실천행으로서의 수행을 행하는 것이 필요불가결하다는 소신으로 수행에 관한 공부와 실천에 임하다보니 수행에 대해 가장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불교공부에 치중하게 되었고, 그래서 요청이 있었을 때에수행이라는 타이틀 아래 수개월에 걸쳐서 불교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비록 모임에서 물러 나와 있으나 모임의 설립 취지가 원만히 이루어지고, 그래서 ‘심원 철학회’가 더욱 발전하기를 바라고 성원하는 나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 

  돌이켜 보면 심원 선생님과 나와의 인연은 하이데거를 매개로 시작된 ‘인연의 시작’과 선생님을 다시 만나 금강선원을 다니던 시절을 중심으로 한 “특별한 인연”과 선생님 사후의 ‘후속된 인연’으로 볼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김형효 선생님과 나와의 인연은 만남과 헤어짐을 비롯한 모든 것이 마치 극적으로 짜 맞추어진 것 같아서 한때의, 우연적, 일시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인연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정해져 이루어진 인연인 것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고, 따라서 사모님이신 후조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특별한 인연”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제 선생님과의 “특별한 인연”을 정리해 보면 선생님과 나 사이는 나이 차이가 2살밖에 안 되고, 비록 짧은 시간의 강의를 듣고 배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에게는 선생님은 ‘스승’ 과 같고, 상당한 기간 동안을 금강선원에 같이 다니면서 불교 철학, 동, 서양철학, 사상, 과학 등 이런저런 담론을 서로 주고받으며 지낸 일들을 떠 올려 보면 도반(道伴) 같은 특별한 사이에서나 있을 법한 것들이 많았으니,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굳이 표현하면 심원 선생님과 나 사이는 ‘스승’과 제자 사이 같으면서, 같은 불제자(佛弟子)로서 ‘도반(道伴)’에 가까운 사이로도 봐야 할 것 같다.

  이상 두서없이 쓴 글 가운데 결례된 것이 있다면 두루 양해를 구하면서, 끝으로 심원 김형효  선생님을 기리며......, 극락왕생 하시기를 빈다.